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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반이 지났다

잠자는데 방해되니까 저녁에는 커피는 마시지 않으려고 했는데, 차게 식은 커피를 아직도 홀짝거린다. 맛이 좋았는데 식으니 별로다. 그래도 키보드에 손을 얹고 쓸거리를 생각하다보니 머그컵에 저절로 손이 간다.

블로그를 방치해둔지 1년 반이 지났다. 열어보지도 않았고, 문자 그대로 방치해둔 것이었다. 마지막 포스팅 이후 잠시 블로그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블로그를 시작할만한 동기는 없지만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만 하고 있을때, 내가 다니는 회사와 내가 하는 업무에 대한 질문이 트위터에서 꽤 많았었던게 결정적이었다. 그렇게 결심했던 주말에 바로 틀을 잡았다.

소소한 내 기록에, 소수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뭔가가 되었으면 했다.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들이 좋았다. 저장공간에 흩어져있던 사진이나 문서들도 오랫만에 훑어보며 피식 웃기도 했다. 일하다 쉬면서 잠깐씩 타이핑하면서 포스팅을 조금씩 조금씩 완성하는 것도 꽤 즐거웠다. 그렇게 포스팅 하나가 완성되었다.

혹여나 읽은 누군가는 재미있는 반응을 보여주지 않을까, 궁금한게 있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링크를 트위터에 공유했다.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블로그 글을 읽어서 놀랐다. 열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만 되어도 시간을 투자한 보람이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좋아요나 리트윗도 예상보다 많았고 블로그 웹사이트 분석을 보니 접속자 수가 엄청 많았다. 어떤 분은 “이러이러한 이야기도 해주세요” 라고 요청까지도 하셨다.

그렇게 블로그 글의 주제는 트위터에서 팔로우하시는 분들의 궁금함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조금은 가벼운 일상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그게 나쁘지는 않았다.

이후로 여러 일들이 있었다.

트위터에서 좋은 것들을 많이 봤지만 보고싶지 않은 것들도 많이 보게 되면서, 스스로에 집중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지배적이 되었다. 트위터는 처음으로 국내 “커뮤니티”를 경험해 본 좋은 기회였음은 분명하다.

개발자로서 SNS 에서 소통하는 것은 자제하기로 했다. 트위터 계정도 없앴다. 블로그 글 몇개도 지웠다. 그렇게 블로그에서도 멀어졌다. 다른 지역으로의 이사를 포함해서 일상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 후에 이어지는 차분한 날들이 즐거웠다.

그때쯤, 처음에 생각했었던 “소소한 내 기록”이라는 것이 불현듯 떠오르더라.

그렇게 블로그를 시작하려고 했었던 그때의 그 마음으로 돌아가서, 작심하고 글을 써내는 것보다, 일상에 대한 인상을 한 문장이라도 가볍게 남기고자 하는 생각으로 가볍게 다시 써보려 한다.

딱 맞게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마셨다.

사실 집중해서 타이핑하느라 머그컵에는 두어번 정도만 손을 댔다. 잠을 푹 잘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별로였던 식은 커피가 지금은 조금 단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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